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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르스크(Kursk)
    영화 2020. 5. 25. 14:47

    ◈ 쿠르스크(Kursk) ◈

     

     

     

     

     

     

    - 감독 : 토마스 빈터베르그

     

    - 제작 : 아리엘 제이통

     

    - 각본 : 로버트 로댓

     

    - 출연 :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 콜리 퍼스 / 레아 세이두

     

    - 장르 : 드라마 / 15세 관람가

     

    - 개봉일 : 2019년 1월 16일

     

     

     

     

     

     

     

     

     

     

     

     

     

    2018년에 제작된 벨기에, 룩셈부르크 2개국 합작 영화

    2000년 8월 12일 노르웨이 바렌츠 해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 줄거리

    평범한 토요일 아침, 해군 대위 ‘미하일’(마티아스 쇼에나에츠)은 핵잠수함 쿠르스크에 승선한다.


    출항 직후 예기치 못한 폭발로 잠수함이 침몰하고, 두 번째 폭발로 쿠르스크 선체에 큰 구멍이 뚫린다. 

    그 시각 남편의 소식을 들은 ‘미하일’의 아내 ‘타냐’(레아 세이두)는 그의 생사를 확인하려 하지만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고 러시아 정부는 영국군 준장 ‘데이비드’(콜린 퍼스)의 구조 지원도 마다한 채 시간만 보내는데… 

    두 번의 폭발과 침몰한 잠수함, 118명 중 확인된 생존자는 단 23명 그들은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다.

     

    출처 : 네이버 영화

     


    ◆ 쿠르스크 함 침몰사건

     

    K-141 쿠르스크(출처 : 나무위키)

    1. 개요

    2000년 8월 12일 노르웨이 바렌츠 해에서 발생한 잠수함 침몰 사건이다.

     

    수차례의 인양 시도가 있었지만 생존자는 없었던, 세계 해군 역사에 남을 비극으로 러시아군의 부족한 예산 하의 열악한 군용 장비 운용이 빚어낸 인재였다.

     

    침몰 사실은 러시아 정부나 언론이 아닌 서방 소식통들을 통해 먼저 세계에 알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끌던 당시 러시아 정부는 사고가 나자 쉬쉬하기 바빴고, 사건이 보도되고 이틀이 지나서야 침몰 사실을 인정했다.

     

    사고 당시 잠수함 안에는 118명의 승조원이 타고 있었는데, 침몰 뒤에도 상당한 시간 동안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러시아는 보안을 이유로 들며 승조원 구출작업에 늦장을 부렸고 서방의 구조작업 지원 제안도 거절했다.

    가라앉은 잠수함에 먼저 접근, 승조원들이 모두 질식해 숨져있음을 확인한 것은 노르웨이 해군 구조대였다.

     

    대통령 취임 100일 전야에 대형 악재를 만난 푸틴은 자국 군인들의 생명보다 위신을 챙기려다 최악의 참사를 자초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2. 사고 경위

     

    2000년 8월 12일 토요일.

     

    쿠르스크 함은 수십만의 최대 규모, 그리고 구소련 붕괴 이후 첫 훈련인 "여름-X" 훈련에 참여하고 있었다.

     

    훈련에는 30척의 배와 3척의 잠수함이 참가했고, 훈련 중이었지만 쿠르스크 호는 전투용 무기를 가득 싣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18기의 SS-N-16 스탈리온 대함 미사일과 22기의 SS-N-19/P-700 그라닛 순항 미사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쿠르스크 함은 북방함대 기함인 키로프급 순양함 표트르 벨리키 함을 향해 두발의 모의 어뢰를 발사할 예정이었다.

     

    8시 51분  쿠르스크 함은 훈련용 어뢰 발사 허가를 요청하였고, "좋다(добро́)"는 답변을 받았다.

     

    11시 29분, 쿠르스크 호는 북해 함대의 기함인 키로프급 미사일 순양함 표트르 벨리키 호에 2발의 모의 어뢰를 발사하였다.

     

    탄두가 장착되지 않은 65-76 연습용 어뢰가 쿠르스크 호의 우현 4번 어뢰 발사관에 장전되었다.

     

    어뢰의 길이는 10.7 m, 무게는 5톤이었다.

     

    오전 11시 29분.

     

    잠수함 함수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어뢰 덮개 등을 날려버렸다. 이 폭발로 화재가 발생하였고, 그 온도는 2700℃에 이르렀음이 후에 밝혀졌다.

     

    노르웨이 지진파 탐지 연구소와 세계의 다른 곳에 위치한 지진파 감지기에서 리히터 규모 1.5의 폭발이 감지되었다.

    발생 위치는 북위 69˚ 38' 동경 37˚ 19' 무르만스크 동북쪽으로 고정되었는데, 노르웨이로부터 250km, 콜라 반도로부터 80km 떨어진 곳이다.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긴급 부상 시스템을 이용해 즉시 부상할 수 있었지만 이 폭발로 함장 등 주요 장교들이 몰살당해 지휘체계가 붕괴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2분 15초 후인 11시 31분.

     

    잠수함 안에서 더 큰 폭발이 일어났다.

     

    두 번째 폭발은 TNT 2~3톤의 폭발에 해당되는 규모이며, 전투용 어뢰 5~7발가량의 탄두의 폭발력에 해당된다.

    한 발의 65형 어뢰는 항공모함을 격침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450kg의 탄두로 무장되어 있었다.

     

    첫 번째 폭발보다 250배 컸던 두 번째 폭발은 유럽에서 리히터 규모 4.2의 크기로 측정되었고, 멀리 알래스카에까지 감지되었다.

     

    이 폭발로 선체엔 2㎡의 구멍이 뚫렸다.

     

    폭발의 규모는 쿠르스크 함의 원자로가 견딜 수 있는 최대 충격과 거의 일치했다.

     

    따라서 조금만 폭발이 더 강했어도 원자로가 파손되어 방사능이 누출될 수 있었다.

     

    길이 154m, 3층 높이에 배수량 13,400t인 쿠르스크 함은 1,000m 수심 해저에서도 견디도록 설계돼 있었다.

    그러나 격실들로 물이 초당 9만ℓ씩 쏟아져 들어왔고 선체는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108m 해저로 가라앉았다.

     

    3. 구조 및 인양

     

    2000년 8월 12일 사건 당일 저녁

     

    쿠르스크로부터 응답이 없는 것을 염려하기 시작했고, 거듭된 교신 실패로 늦은 저녁에는 수색구조작전이 발령되었다.

     

    2000년 8월 13일 아침 

     

    파손되어 가라앉은 쿠르스크의 선체가 발견된다.

     

    프리즈 함이 구조를 위해 쿠르스크 함의 9번 격실 탈출 해치에 도킹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러시아가 동원할 수 있는 심해 탐사선 겸 구조선인 켈디쉬 호가 타이타닉 호 탐사를 위해 임대되어 대서양에 나가 있어, 해군의 구형 해난구조함 프리즈 함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 8월 14일

     

    항모 쿠츠네쵸프를 비롯하여 잠수함 구조함, 수상함 등 22척의 함정을 동원하여 구조작업에 나섰으나 심한 비바람과 높은 파도로 작업을 포기했다.

     

    2000년 8월 15일

     

    밤 20시부터 본격적인 승무원 구출작업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블라디미르 쿠로예소프 해군사령관은 기상 조건이 좋으면 16일까지 구출 작전을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승조원들이 살아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쿠르스크 함을 제작한 루빈 사의 이고리 바라노프 루빈 총 기사도 승조원들이 이틀 가량 버틸 수 있는 산소가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으며, 생존하고 있는 일부 증조원들이 잠수함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탐지되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해군은 구조캡슐을 사고 잠수함 해치와 연결하려고 시도했지만 강한 수중 해류와 해상상태 및 시계불량 등으로 작업이 수시로 중단되었는가 하면 침몰함이 60˚로 기운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캡슐을 잠수함과 연결할 수가 없었다.

     

    인원 구조 캡슐은 잠수함 해치와 연결하여 1회에 9명까지 탈출 가능한 장비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 8월 15일의 구조작업이 실패했지만 그때까지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구조지원 제의를 거부했다.

    새뮤얼 버그 미안보 보좌관이 미 해군을 동원해 구조작업을 돕겠다고 했지만 러시아는 구조장비가 다르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해난 구조 능력에 있어서는 서방이 훨씬 앞서 있었고, 러시아 단독으로는 시간 안에 승조원 구조는커녕 사고 수습조차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었음에도 러시아 정부는 어째서인지 자국 단독 대응만을 고집했다.

     

    이는 냉전시대 적국이자 현재의 가상적국인 미국에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와 자국 해군의 최중요 전력 중 하나인 오스카급 핵잠수함을 외국에 내보이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이유가 겹쳤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2000년 8월 16일

     

    아침에 다시 구조정 2척을 동원하여 1차 때의 구조작전과 동일한 방법으로 구조를 시도했으나 역시 해상상태와 시계불량으로 실패했다.

     

    오후에 다시 수중 해류 2.5kts, 파도 롤리 45˚ 상태에서도 1회 20명까지 구조 가능한 50톤급 심해구조 유인 잠수정(조종사 2~3명) 베스테르호를 투입하여 구조를 시도했으나 또다시 구조에 실패했다.

     

    구조 캡슐과 유인 잠수정에 의한 구조가 어렵게 되자 러시아 잠수함 설계국에서는 폰툰을 이용하여 사고 잠수함 함미 부분을 견착, 수심 30m ~ 50m까지 수직 인양 후 함미 해치 부분 탈출구로 승무원을 구출한다는 계획까지 검토했으나 수직 인양 시 잠수함이 무게에 의해 두 동강 날 가능성이 우려되어 이 방안은 일단 보류되었다.

     

    4차에 걸친 구조작업이 모두 실패하자 러시아는 서방에 구조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과 전화 통화 후 러시아 해군에게 국외 지원방안을 받아들이도록 지시하자 러시아 해군 부사령관이 8월 17일 나토를 방문하여 구조작업에 대한 협의에 들어갔다.

     

    이런 가운데 8월 17일 사고 잠수함 내에서 음향 수단 통신이 두절되면서, 승조원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러시아 해군은 사고 잠수함 내 자체 산소량은 8월 18일까지 사용 가능하며 최대 8월 25일까지는 승무원 생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면서도 승조원의 생사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라고 발표했다.

     

    2000년 8월 19일

     

    영국과 노르웨이의 구조팀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사고해역의 해상상태가 계속 좋지 않아 구조작업은 시도하지 못했다.

     

    2000년 8월 20일

     

    영국의 카메라, 절삭기, 그라인더를 장착한 LR-5 구조정과 노르웨이의 심해 잠수 전문가와 장비가 합류하였다.

    LR-5 구조정은 2000년 6월 발트해에서의 사고 시 3일 동안 70명을 구조한 적도 있었다.

     

    구조에 착수한 앨런 호스 키스 영국 구조팀 단장은 조건이 양호하기 때문에 생존자가 있다면 구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일리야 클레바노프 부총리는 탈출용 해치가 심각하게 균열돼 진공이 유지되기 어려운 상태라며 영국의 소형 잠수정이 쿠르스크 함과 결합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미하일 모차크 러시아 북해함대 참모장은 쿠르스크 함에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지난 12일 폭발 당시 선체 앞부분이 크게 파손되면서 승무원 대부분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00년 8월 21일

     

    쿠르스크 함이 침몰한 지 9일째 노르웨이 해군의 심해잠수사들이 탈출 해치에 도달했지만, 그때는 이미 9번 격실이 침수된 후였고, 9호 선실에서 시신 1구를 발견하여 인양하였다.

     

    쿠르스크 함 내는 바닷물로 가득 차 있었고, 해치를 열었을 때 기포가 올라와서 성분을 분석했는데 연기와 부패 가스가 섞여 있었다. 즉, 이미 오래전에 승조원들이 사망하여 그들의 시체가 부패 중이었다.

     

    승조원 전원 사망 사실이 확인되자 러시아는 "118명 전원 사망"을 공표했다.

     

    3. 인양작업

    시신 인양 작업은 10월 20일 러시아·영국·노르웨이의 합동 잠수팀에 의해 재개되었다.

     

    10월 26일에는 4구의 시신이 인양되었는데, 그중 신원이 확인된 해군 중위의 시신에서 잠수함 폭발 직후 9번 격실에 23명이 생존해 있었음을 기록한 메모가 발견되었다.

     

    메모는 생존해 있던 승조원들 중 최선임 자였던 드미트리 콜레스니코프 기관 대위(당시 27세)의 시신에서 나온 메모로

    내용은 “너무 깜깜하지만 감각으로 쓴다. 살 가망은 없을 거다. 누군가 이 글을 읽기를 바란다… 모두에게 안부를. 절망할 필요도 없다.”였다.

     

    앞서 언급되었던 드미트리 콜레스니코프 대위의 메모에 "6, 7, 8번 격실의 전 인원이 9번 격실로 이동했다. 여기에는 23명이 있다. 이 사고의 결과로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우리 중 아무도 수면 위로 돌아가지 못하리라고. 나는 지금 어둠 속에서 적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100미터 정도는 구조가 가능한 수심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여서 구조를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 그들을 구조해줄 것을 믿으며.... 하지만 아마도 살아 돌아가리라 생각한 이는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부검 결과 이들은 사고 후에 최대 8시간 정도 생존해 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9번 격실의 화재 흔적과 내부에서 발견된 타버린 이산화탄소 제거 카트리지로 추정해 볼 때, 승조원들이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제거 카트리지를 이용하려 시도했는데 하필이면 이것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이것이 기름이나 물과 접촉하면서 화재가 발생. 전원 질식사한 것으로 보인다.(이산화탄소 제거 카트리지는 물이나 기름을 만나면 화재를 일으키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11월 7일, 모두 12구의 시신을 인양한 상태에서 러시아 해군은 선내 작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사체 인양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다.

     

    쿠르스크의 선체는 2001년 네덜란드의 인양업체에 의해 절단 작업 후 대부분이 인양되어 로슬랴코바 해군기지로 운반되었다.

     

    총 94구의 시신이 인양되었고 그중 3구는 화재로 훼손이 심해 신원확인이 불가능하였다. 함장을 포함한 31명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해군 국립묘지에 안치되었으며,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쿠르스크의 모항 자파드 나야 리츠카에 세워졌다.


    2002년 러시아 해군은 해저의 쿠르스크 함의 미인양 잔해를 폭약으로 수중 폭파하였다

     

    인양된 쿠르스크 함(출처 : 더 아시안)

     

    4. 사고 원인

     

    인양한 선체를 해체, 분석해 폭발 원인을 찾던 합동조사반은 선체의 머리에 눈길을 모았다.

     

    바로 어뢰실이 완전히 날아갔고, 거기서 연결된 선체의 다른 부분이 특히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특히 어뢰 발사관 덮개가 함미 뒤쪽에서 발견된 것이 결정적이었는데 이는 어뢰 발사관에서 폭발이 처음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이 사고는 러시아 해군의 고질병인 '낡은 장비'와 '안전을 생각지 않은 설계'가 얽혀 만든 인재로 드러났다.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과 비교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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