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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사고사건 사고/기타 사건 사고 2020. 5. 29. 15:09
▣ 삼풍백화점 ▣
삼풍건설산업이 1987년 5월 착공하여 1989년 12월 개장한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세웠던 대한민국의 백화점이다.
1989년 12월 1일부터 1995년 6월 29일까지 영업했다.
당시 매출액 기준 대한민국 업계 1위를 달리던 초호화 백화점이었으며, 롯데백화점 본점 다음가는 규모의 백화점이었다.
당시 하얀색 바탕의 기존 백화점 건물 디자인을 탈피하여 외형 색상을 분홍색으로 채택했고 콘크리트와 유리가 조화된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삼풍백화점은 지금 기준으로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각종 명품 브랜드들을 대거 입점시켜 이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다.
중앙홀 4층에 있던 아트홀은 서울 시내 유명 공연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MBC 라디오 공개방송 등 다양한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다.
또 인테리어 또한 당시로서는 고급스러웠었다. 또 수입품과 사치품을 많이 판매했는데, 이 때문에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B동에는 수영장 같은 문화공간을 만들어 손님들을 끌어모으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영국 문화전과 이태리 문화전 같은 행사를 통해 해외 문화 및 브랜드들을 소개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붕괴 당시에는 프랑스 문화전을 준비 중이기도 했다.
삼풍백화점의 매출 규모는 무섭게 성장했는데, 1991년 개점 2년만에 두배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고 1994년에는 전국 백화점들 중 매출규모 7위권을 기록했다.
93년 경부터는 B동옆 주차장 부지에 빌딩을 건설해 삼풍그룹 본사 건물 겸 저층부 백화점 건물을 추가로 지어서 백화점을 더 확장시킬 계획도 있었지만, 예정대로 추진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경 붕괴했다.
▣ 이 준회장 ▣
창업주 이준 회장은 1960년대, 중앙정보부의 인맥으로 강남 서초구의 군용지를 불하받았다.
이 땅은 1970~80년대 강남 개발 열풍에 급격히 발전하고 이준은 그동안 건설로 많은 돈을 벌었다.
이때 지은 건축물 중 하나가 바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이다.
이준은 그동안 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1980년대 후반 서초구 외인주택단지를 철거한 부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삼풍아파트를 건설하고 아파트 단지 내 근린상업지구 개념으로 삼풍백화점도 함께 건설하게 된다.
▣ 붕괴 원인 ▣
1. 부지 용도 변경
삼풍백화점은 1987년 착공을 시작해서 당시에는 4층 구조의 상가용 건물로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삼풍백화점은 원래 "삼풍 랜드"라는 이름으로 바로 옆에 있던 삼풍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종합상가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해당 지역은 본래 주거용 토지로써 상업용 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삼풍건설산업 창업주 이준은 뇌물을 통해 인허가를 받아내면서 본래의 용도에서 백화점으로 용도를 변경하였다.
부지 용도 비리를 두고 부실공사가 붕괴 원인임이 알려지지 않았던 붕괴 직후에는 허약한 지반 때문에 건물이 붕괴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비록 삼풍백화점의 붕괴 원인은 지반이 아니었지만, 삼풍백화점이 건설 시작부터 철저하게 비리의 온상인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 내부 구조 임의 변경
이 과정에서 기존 허가 구조 대신 1개의 층을 추가로 얹어 도합 5층으로 건축을 진행하려 했다.
당시 시공사인 우성건설이 사전 계획에 없는 개조에 따라 붕괴 위험성을 이유로 증축을 거부했다.
삼풍건설은 우성건설과의 시공 계약을 중도 파기하고 자회사인 삼풍건설산업에 건축을 위임했다.
또, 법률상 건물의 사용용도에 의해 구조를 변경할 시 반드시 구조 전문가의 검토를 받아야 하는데 삼풍백화점 설계 당시에는 이를 무시하여 설계, 공사가 강행되었다.
한 삼풍백화점은 준공검사도 무시하고 가사용 승인만으로 개점하였다.
이후 9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준공승인을 받았으며, 1994년 10월에는 기초 부분인 지하 1층에 구조변경 공사를 했고, 1994년 11월에는 위법건축물로 판정을 받았다.
3. 부실시공
삼풍백화점 초기 설계도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용도가 바뀌면서 구조를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건축을 진행했다.
삼풍백화점은 무량판(Flat-Slab) 구조로 기둥 위에서 지붕의 무게를 전달해주는 건축 부재인 보(대들보)가 없이 바닥이 직접 기둥으로 하중을 전달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수직 하중이 크고 층높이가 낮은 경우에 적합한 구조이다.
설계 상으로는 기둥과 위층 바닥 사이에 하중 전달을 보조하는 지판(Drop-Panal)이 하나 더 설치되어 바닥 철근과 기둥 철근이 잘 연결되도록 했으나 실제로는 지판 두께도 충분하지 않았으며, 일부 기둥은 지판 자체가 없어서 바닥과 기둥의 철근 연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기둥조차도 줄였는데, 애초 구조계산서에는 건물 4층과 5층의 20개 기둥 가운데 8개는 지름이 800mm로 그 안에 고장력 철근 16개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 8개의 기둥이 설계 과정을 거치면서 지름은 600mm로 가늘어지고 철근 숫자도 8개로 줄였다.
또한 에스컬레이터에 방화벽을 설치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부분은 기둥의 4분의 1을 자르기도 하였다.
이때 사라진 구멍만큼 콘크리트가 사라지면서, 옆에 있는 기둥이 버텨야 하는 무게는 더 커졌다.
이런 식으로 기둥이 줄어들면서 철근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철근의 경우 바닥 끝쪽 철근을 "L"자로 꺾인 형태로 시공해서 건물 상판의 침하로 붕괴가 일어난다 해도 철근의 끝부분이 일종의 갈고리 역할을 하여 제동장치 역할을 하도록 해야 했으나, 삼풍백화점은 비용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一"자형 철근을 사용했는데, 갈고리 없이 끝부분을 조금 더 연장하는 식으로 단순하게 시공했다.
백화점이 붕괴할 당시 마치 발파 방법으로 철거될 때처럼 아무런 제동 없이 순식간에 무너졌던 것도 바로 이 철근의 끝부분을 "ㄴ"자로 꺾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위 자료는 1987년 우원 건축사무소에서 설계한 삼풍백화점의 초기 설계도이다.
만약 초기 설계대로 지어졌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부실시공에도 불구하고 6년을 버틴 삼풍백화점이 기이하다고 평가했다.
4. 부실관리
불법 증축으로 추가된 5층은 개점 초기에는 비교적 바닥 하중이 가벼운 롤러장이 설치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롤러장은 고급스러운 백화점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식당가로 불법 변경하였다.
그 과정에서 5층 바닥에 배수로가 설치되고 콘크리트도 추가되면서 건물에 무리가 갔다.
식당가가 한식당이라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전통 식사 문화는 앉아서 밥을 먹는 것이다'라는 시대착오적 이유로 온돌 난방 시설까지 설치되었다.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가 추가되었다.
거기에 더해 5층에는 설계에 없던 벽돌벽과 무거운 돌 정원, 대형 냉장고 등 무거운 가전제품을 설치했다.
이러한 불법 용도 변경으로 인해 하중이 3~4배 이상 증가하였다. 더군다나 4층에서는 매장 확장을 이유로 기둥을 없애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식당가 설계를 할 경우 난방 장치의 중량만 해도 건물 3층 정도를 쌓는 정도의 큰 무게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백화점 한식당은 전통적인 난방장치 대신 전기패널을 설치하고, 온돌처럼 꾸미기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백화점 푸드코트들이 대부분 지하에 있는 이유도 다 이 삼풍백화점 사고 때문이다.
2010년대부터는 공법과 설계기준의 상발 전소화와 동선 분석의 변화로 푸드코트를 지하에, 고급 식당가를 최고층에 놓고 있다.
여기에 건물 붕괴를 더욱 가속화시킨 사업이 또 있었다.
사고 1년 전인 1994년 1월, 삼풍백화점이 2층에 "삼풍 문고"라는 이름의 서점을 입점시킨 것이다.
책은 단위면적당 무게가 상당히 높은 물품에 속하며, 특히 대한민국 책들은 더 하얗게 하려고 종이에다 돌가루를 많이 넣고 표지도 두꺼운 골판지를 사용해서 외국 책 보다 훨씬 더 무겁다.
2009년에 정해진 구조 설계 기준 백화점 2층 이상의 설계하중은 단위면적당 400kg, 서고 750kg이다.
용도 변경으로 실하중이 초과한다면 반드시 진단 및 구조검토를 거쳐 보강 등 조치를 해야 하지만, 삼풍백화점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3월 서점은 철수해서 지하 1층으로 이사하지만, 가뜩이나 약했던 건물의 하중을 지지하던 구조물들에 가해진 서점의 무게는 건물의 붕괴를 앞당기게 했다.
5. 에어컨 냉각탑 이동
삼풍백화점 붕괴의 결정적 원인은 옥상에 위치한 에어컨 냉각탑이었다.
본래 삼풍백화점의 에어컨은 북관 동쪽 삼풍아파트 7동 방향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삼풍백화점은 삼풍아파트와 불과 30m도 떨어져 있지 않았고, 냉각탑 소음으로 삼풍아파트와 삼호가든에서 주민들의 불만이 제기되었다.
이에 삼풍백화점은 1989년 12월부터 1990년 정식 개장 전까지 이 냉각탑들을 반대편 우면로 측으로 옮겼다.
그런데 에어컨 냉각탑의 이동 방법이 문제였다.
당시 삼풍백화점은 남, 북관 옥상에 삼각형 모양의 채광창을 옥상 가운데에 설치했는데, 원래 크레인으로 들어서 옮기는 게 옳은 방법 었다.
그러나 백화점 측은 이동에 필요한 예산을 줄이기 위해 냉각탑 아래에 롤러를 장착하여 옥상 상판 위에서 천천히 끌어가며 반대쪽으로 옮기는 최악의 방법을 택했다.
국 1대당 12톤이나 되는 냉각탑을 옮기는 과정에서 옥상 바닥과 지지 구조물에 엄청난 압력을 줬다.
그 결과 건물 전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널찍한 매장 공간 확보를 이유로 기둥을 없애고 무단 증축하는 등 잘못된 시공으로 약해진 건물은 결국 이 과정에서 바닥이 깨졌다. 옥상 바닥이 버틸 수 있는 한도는 이미 도를 넘은 것이다.
특히 건물 붕괴의 단초 부분이었던 5E 지주 부분에 큰 충격이 가해졌다.
냉각탑에서 발생한 진동은 옥상을 비롯한 5층 구조물에 지속적으로 전달되어 균열을 발생시켰다.
▣ 전조현상 ▣
19994년 삼풍백화점 옆은 레포츠 센터 2층에 있었던 금융동(당시의 한미, 조흥은행 등)을 1층으로 옮기고 내부공사 후 삼풍 문고라는 이름의 서점으로 1994년 1월 5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대형 서점의 엄청난 무게의 책장과 엄청나게 많은 권 수의 그 무거운 책들이 들어차는 바람에 건물이 버틸 수 있는 한계점을 초과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레포츠센터와 중앙홀 지역에서도 균열이 1995년 여름에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1년 동안 셀 수도 없이 늘었다.
결국, 삼풍백화점 총관리부는 서점을 입점한 지 1년 2개월 만인 1995년 3월 2일에 지상에 있던 삼풍 문고를 철수시키고 대신 지하로 옮겼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고, 균열은 점점 심각해졌다.
중앙홀과 B동의 건물까지 균열과 뼈대 구부러짐 현상이 일어나면서 백화점 건물 전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으며, 붕괴 당일까지 지속되었다.
붕괴 2개월 전인 1995년 4월에는 5층 북관 식당가 천장에 균열이 발생했다.
5월부터 이 균열에서 미세한 콘크리트 알갱이와 골재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5층 바닥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삼풍백화점 관계자들을 비롯해 상당수가 이러한 붕괴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변변한 자가진단조차 없었다.
5월 들어 균열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자 관리자는 5층을 폐쇄하고 토목 공학자들을 불러 기본적인 검사를 한 결과 '건물 붕괴 위험이 있다.'는 당연한 결론이 나왔다.
결과를 보면 건물 전체를 폐쇄하고 접근 금지령을 내려야 정상인데, 삼 풍백확점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위의 사진을 보면 펀칭(뚫림 전단)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백화점 옥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펀칭은 무량판 구조의 건물에서 바닥과 지판이 기둥으로 전달할 수 있는 하중을 넘어서면서 바닥이 처지고 기둥이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현상으로, 건물 기둥과 지판의 결속 구조가 무량판 구조물 안전성의 핵심임을 감안하자면, 당시 삼풍백화점 건물은 구조적으로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상황이었고 이는 다시 말해서 건물이 본격적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5층 식당가는 천장과 바닥이 침하되었고, 탁자가 기울어진 현상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바닥이 기울어져있었다.
▣ 붕괴 과정 ▣
1995년 6월 29일
전날 지붕에 철근이 올라오는 펀칭 현상이 목격되면서 이한상 삼풍백화점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들이 이에 대한 '대책'이라도 짜려고 했다. 그들은 이날 5층에 있었던 일을 보고 비상사태임을 직감했다.
오전 9시
5층 식당가 춘원 전주비빔밥 전문점 주인 김서정 씨가 '춘원 전주비빔밥 전문집에 바닥이 돌출 부분이 2m가 생겼고 천장이 조금 내려왔다. 빨리 와서 보라.'며 긴급전화를 했다.
확인 결과 5층 기둥에 무려 20 cm나 되는 균열이 발견되었고 천장이 뒤틀려 내려앉아 있었다.
오전 9시 40분
백화점 측은 바닥 침하 현상을 직접 확인했고, 시설부의 권유로 춘원 전주비빔밥은 휴업에 들어간다.
오전 10시
A동(북관) 4층 상품 의류부 직원(당시 31세)도 건물 4-5층에서 들려오는 '뚝뚝, 드르륵' 소리와 함께 약 3분간 무거운 진동을 느꼈다.
이한상 사장은 오전 11시쯤 이영길 시설이사 및 건축과 이완수 차장과 함께 5층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오전 11시
가락국수 전문점 '현지'와 냉면 전문점 '미전'의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고 바닥이 내려앉기 시작하였다.
바닥이 기울면서 주방 조리대가 넘어지는 일도 있었고 균열로 인해 콘크리트 부스러기가 음식에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낮 12시 무렵
백화점 측은 건물 설계 감리 회사인 우원 건축에 연락하는 한편, 옥상의 에어컨 가동과 5층 입주업소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지시켰다.
또한 5층 행사 매장의 도자기, 가구들을 각각 4층, 지하 3층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식당가와 같이 있던 상품권 매장도 1층 로비로 이동시켰다.
12시 30분경
이한상 사장, 이영길 이사 등이 5층의 균열 현장을 둘러보면서 5층의 뒤틀림으로 많게는 약 10cm까지 침하된 곳도 발견했다.
수행 중인 건축설계사는 5층 식당가와 4층 귀금속 코너의 대피를 건의하였고 이를 받아들인 백화점 측은 5층 대부분의 점포와 4층 귀금속코너의 영업을 중단시켰다.
무게와 진동 때문에 균열의 원인으로 지목된 옥상의 냉각탑 작동도 중단되었으며, 이때부터 오후 2시까지 냉각탑의 배수 작업이 진행되었다.
오후 3시
구조기술사 이학수가 도착하였고 백화점 임원진과 대동하여 안전 진단을 실시하였다.
이학수 기술사의 지시로 5층의 기둥과 바닥을 파보니 균열이 더욱 커져 주먹이 들어갈 정도가 되었다.
오후 4시
임원회의실(당시 삼풍백화점 남관 3층)에서 이준 회장 주재로 2차로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임형재, 이학수 등은 해당 건물의 설계법이었던 무량판 공법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며 원인 분석을 브리핑했다.
임형재 소장은 건물 안전에 중대한 이상이 발견되었고, 속히 영업을 중단하고 긴급보수를 해야 한다고 경영진에게 권했다.
여기서 이학수 구조 기술자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는데, "붕괴 위험은 없다."라고 보고하고 "보강 방법으로 철제 빔으로 슬래브를 받치는 방법, 기둥 주위에 철제 빔을 받치고 철제 와이어로 기둥과 기둥 사이를 받쳐주는 포스 텐션 공법이 있다."라고 하며, 임형재 소장이 말한 "빨리 긴급보수를 해야 하며 고객들을 대피시키라."는 조언과는 상반된 제안을 한 것이다.
이준 회장은 이학수의 의견을 지지했고 영업중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봤던 이영길 이사는 나머지 이사들과 함께 다시 이준 회장에게 즉각 고객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오히려 이준 회장이 경제적 피해를 생각하여 노발대발하며 반대했고, 나머지 경영진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책회의는 백화점의 영업중지 없이 보수공사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결론이 났고, 사고의 피해를 최소화할 골든타임은 떠나버리고 말았다.
대책 회의 이후 구체적인 보수 계획에 대한 논의가 1시간이 넘는 한편, 임 소장은 설계 도면을 찾으러 서초동에 있던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후 중앙홀 2층의 행사 전을 모두 스포츠센터 1층으로 옮기고 2층은 통행을 금지했다.
한편 백화점 측은 이런 위급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고객들에게 전화를 돌려 행사를 안내하면서 백화점 방문을 권유하고 있었다.
하필 이 날은 세일 시작 전 우수고객들을 상대로 사전세일을 하는 날이었다.
실제로 백화점의 전화를 받고 백화점을 방문했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오후 5시경
4층의 천장까지 가라앉기 시작하자 백화점 측은 고객들이 4층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
오후 5시 30분경
임원실 회의장에서는 야간보수공사 준비를 위해 떠난 일부 임원들을 제외하고 회의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때 A동으로부터 "탕" 하는 소리가 났다.
오후 5시 40분4층 천장이 "뚝" 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5층 천장에서 시멘트가 떨어졌다.
오후 5시 47분
다시 "뚜둑" 하는 소리가 들려 4층에 있던 사람들은 비상구와 B동 방향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오후 5시 50분
삼풍백화점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이때 A동 5층에 있던 이영철 부장은 야간보수공사를 준비 중인 이완수 차장에게 전화로 현재 붕괴가 진행 중인 것 같다고 다급하게 알렸다.
1분 뒤, 건물 전체에 굉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오후 5시 52분
옥상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5층의 뒤틀림이 가속화되어 균열이 실시간으로 번지고 곳곳에서 흙먼지가 뿜어져 나왔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5층 직원들은 비상계단을 통해 탈출하기 시작했다.
다른 지상층에서는 다소 늦었지만 직원들이 도망가라고 소리치며 고객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비상계단으로 탈출할 타이밍을 놓친 사람들은 B동으로 대피하기도 하였고 일부는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하에 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를 듣지 못해 탈출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완전 붕괴 20초 전
옥상의 하중을 못 버티고 뒤틀린 5층 슬래브가 4층 바닥으로 완전히 주저앉았고, 이 충격으로 4층부터는 펀칭 전단(Punching Shear) 현상과 함께 연쇄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하였다.
오후 5시 57분
삼풍백화점은 옥상으로부터의 붕괴 시작 5분 만에 땅을 향해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다.
지하 4층은 A동쪽에는 없고 B동쪽에만 있기에 붕괴되지 않았다.
▣ 사고 피해 ▣
이 사고로 502명이 죽었고 937명이 다쳤으며 6명이 실종되었다.
사상자가 총 1,445명으로 6·25 전쟁 다음으로 대한민국 사상 최대 인명 피해로 기록되었다.
재산피해 약 2,700억 원 구조 작업에 약 68,600명 동원되고 크레인과 덤프트럭 등 약 2,400대의 장비가 투입되었다.
또 세계 건물 붕괴 참사 중 사망자가 10번째로 많은 참사로 기록되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행인들과 인근 건물에 있던 사람들까지 무너진 콘크리트에 깔렸다.
주변에 있던 일부 사람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호흡기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후유증을 겪었다. 특히 호흡기 문제 부분에서 석면 문제도 심각하였는데 2009년 이전에 건설된 건물은 거의 100% 석면이 함유된 건축 자재를 상당히 많이 사용한 건물이었고, 이는 삼풍백화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상자, 구조대, 시민, 기자 등 수많은 사람이 상당량의 석면을 호흡기로 마신 것이다.
생존자는 대부분 지상 1~2층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으며, 그때 당시에 지하 1층 식품관에 있었던 사람이 상당히 많아서 그 사람들이 거의 사망했다. 지하 2층과 3층은 주차장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 원인 규명 과정 ▣
당시엔 저렇게 큰 건물이 부실공사로 인해 그대로 무너졌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MBC의 김은혜 기자가 119 구조원 옷을 빌려 입고 붕괴 현장에 들어가 건물의 설계도를 꺼내 왔고, 부실공사로 인한 붕괴였음이 드러났다.
한편 MBC 뉴스데스크에서 삼풍백화점의 붕괴 후 전 삼풍건설그룹 회장 이준이 서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기사를 보도했는데, 여기서 조사를 받는 이준이 떳떳하게 기자를 보고 "이보쇼 기자양반!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손님들에게도 피해가 가는 것이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라는 발언을 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 최종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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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23일 대법원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었다. 전 삼풍그룹 회장 이준에게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하여 징역 7년 6개월이 선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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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설계변경 등을 승인해 준 서울 전 서초구청장 이충우, 황철민에게는 뇌물수수죄를 적용하여 각각 징역 10개월에 추징금 3백만 원과 징역 10개월에 추징금 2백만 원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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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기 전 서울시 상정계장, 김수익 우성건설 형틀반장, 김재근 전 서초구청 주택과장 등 피고인 10명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추징금 3백만 원에서 선고유예 및 추징금 1백만 원의 원심 형량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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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에서 징역 7년형을 받은 이한상 전 삼풍백화점 대표이사 사장 등 12명은 상고를 포기하여 실형이 선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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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관련하여, 업무상 과실치사·업무상 과실치상·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업무상 횡령)·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뇌물수수·뇌물공여·부정처 사후 수뢰·수뢰 후부 정처사·허위공문서 작성·허위작성 공문서 행사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은 총 25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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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이준 전 삼풍그룹 회장은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살다가 지병이 악화되어 2003년 10월 4일 81세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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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상 전 삼풍백화점 사장은 출소 후 삼풍백화점 동쪽에 위치한 삼풍아파트의 자택에서 살다가 2004년 몽골로 건너가 몽골 선교사가 되었고 울란바토르 북쪽의 헝거르라는 마을에서 사역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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